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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노벨 문학상 의미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인 대부분이 예상치 못했던 실로 놀라운 일이다. 노벨상은 해마다 6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지만 한국인 수상자는 평화상 이후 오랫동안 없었다. 이로 인해 노벨상을 우리와 무관한, 크게 특별하지 않은 상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계도 뛰어난 작가와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노벨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런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목표를 향해 끈기있게 도전하는 근성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우수한 민족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쾌거는 이렇게 다져진 바탕에서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은 결과이기도 하다.     노벨 과학상이나 경제 분야의 상은 선진 학문의 다져진 기반 위에서 연구한 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문학상은 그 국가나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 쌓인 깊은 정신문화의 진액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작가가 직·간접으로 겪은 정신적,육체적 충돌을 글로 독자에게 전달해 강력한 소용돌이를 일으킬 때, 문학의 정수에 다가서게 된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하는 시적 산물”이라며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을 준 이유를 밝혔다.     한강 작품의 문학성은 노벨상 수준 그대로이지만, 소재들은 한국 사회에서 끝없이 평행선을 긋는 두 진영에서 상반된 해석을 하는 것들이다. 이로 인해 나라 전체가 환호하며 축하해야 할 수상에 일부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아마 그중 일부는 부끄러운 역사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주요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을 명확히 규명해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문학상 노벨 노벨 문학상 노벨상 수상 노벨상 수준

2024-11-12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에게 거는 최면

가을을 반납했다는 G 작가의 글을 접하고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절실했으면 시간과 계절을 내려놓았을까? 암 투병과 함께 지긋지긋한 통증에 약효가 점점 짧아지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시면 글을 쓰고 있다는 G 작가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있다. 가을을 반납하고서라도 써야 할 그 무엇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쪼록 그 글의 완성이 책으로 엮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침이 온다   우수수 낙엽이 날려도 먼동이 트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햇살이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누군가는 짙은 커피 향에 취해   떠나는 계절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그리울 때 갈대는 땅으로 눕는다       새벽 언덕에 아침이 온다   꿈과 현실의 갈래길에서 한길을 택해   언덕을 내려오다 쓰러진 나무를 보았다   거기 나는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땅으로 눕는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 꿈은 꿈 자체로 아름답다. 기쁨과 슬픔의 조건조차 현실을 인식하는 우리 내면의 의식에서 빚어진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상의 결과가 그 가치를 판단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함부로 타인의 인생을 평가한다거나 스스로의 삶을 평가절하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늘 사람을 대할 때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사고로 대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망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직 이 지구상에 존재하므로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흰’을 읽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짧은 수필의 연결 같기도 하고 자세히 읽다 보면 깊은 시 같기도 했다. 흰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유들을 덤덤히 적어 간 그의 글 속에서 인간의 진진한 삶의 고뇌와 덤으로 살고있는 아픔과 고마움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속도보다는 방향의 진의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결론지으려는 조급함이 때론 방향감을 상실한 채 표류하기도 하기에 우리는 자연의 변화처럼 천천히, 바른 방향으로 그렇게 물들어 가야 한다. 글을 읽는 내내 차분하지만, 영감이 자유로운 그의 내면을 송두리째 접할 수 있었다. ‘흰’의 마지막 소제목 ‘모든 흰’의 내용은 이러했다.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선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최면 새벽 언덕 노벨 문학상 시인 화가

2024-11-04

[기고] 위대한 ‘Korea’

지난달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국 작가 한강이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이다. 한강은 이미 ‘채식주의자’로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녀의 이번 수상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순수문학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사고와 문학적 기술을 편협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문학 평론가 나탈리야 로미키나는 “한강의 산문 특징은 매우 끔찍한 일을 은유적으로, 매우 시적으로 쓴다는 것”이라며 “노벨위원회가 한국 작가에게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여하면서 첫째 여성에게, 둘째 시인을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문학 경향인 시인의 산문을 강조한 것이 흥미롭다”고 평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미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한국이 문학 장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텃밭이 조성되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받은 것도 한국의 탄탄한 경제가 뒷받침되었다고 본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성공을 거둔 것이나,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 등 K팝 스타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것 또한 경제 발전의 산물이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이번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에서도 ‘Korea’의 위대함이 드러났다. 베스트셀러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공동저자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사이먼 존슨 교수, 그리고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가 공동 수상자다. 이들은 ‘국가 간 부의 차이’란 연구로 수상자가 됐다.   수상자들은 지난 달 14일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애스모글루 교수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의 ‘포용적 제도’가 놀라운 경제 성장을 만들어 냈다”며 “이를 통해 분단 전 비슷한 경제 상태였던 한국과 북한이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과 북한의 대조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첫 번째 사례”라며 “한국은 민주화 과정을 거친 후 경제가 더 건강하게 성장했지만, 북한 체제는 같은 상태로 굳어 있다. 그들에게 조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존슨 교수도 “오늘날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국가와 비교해 보면 한국의 성취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호평했다. 그는 “1960년대 초반 한국은 매우 가난했고 권위주의적인 정부 체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과정이 매우 어렵고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오랫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중국도 ‘포용적 제도’를 갖춰야 강력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로빈슨 교수는 이날 시카고대가 주최한 별도 기자회견에서 개별 국가의 발전 방향을 설정하려면 먼저 해당 사회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구 이론이나 경험을 다른 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를 해당 사회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정책이 남북의 성장 격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해방 후 한국이 분단국가로 6·25 전쟁이 가져다준 폐허 속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10월 26일 국립현충원에서 고 박정희 전 대통령 45주기 추모식이 있었다. 올해는 감회가 더욱 새롭다. 10월은 푸른 하늘만큼이나 청명하고 아름답다. 분명한 것은 위대한 ‘Korea’임을 잊지 말자. 박철웅 / 일사회 회장기고 korea 노벨 문학상 경제 성장 애스모글루 교수

2024-11-03

[발언대] 노벨 문학상 작가의 ‘대리전’ 표현 유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단과 국민은 물론 해외 한인들에게도 큰 기쁨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비록 오래전이긴 하지만 한강 작가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6·25 한국전쟁을 ‘대리전’이라 표현한 것은 미군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폄훼한 것으로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풀러튼시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건립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한강 작가의 ‘대리전’ 언급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우리 옛 선인들은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망은 물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경제적 번영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먼저 간 3만6000여 명의 미군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그들은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한강 작가가 지금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는 것도 미군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희생을 ‘대리전’이라는 단어로 가볍게 치부한 것은 그들의 희생정신을 짓밟는 것입니다.     저는 2009년부터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의 도움과 협조로 플러튼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를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1월 11일 역사적인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이 기념비는 단순한 추모의 공간을 넘어, 한미 양국의 동맹과 우호를 상징하고, 차세대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역사 교육의 장입니다. 기념비에 새겨진 3만 6000여 명의 이름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증거이며, 영원히 빛날 별과 같습니다.   한강 작가는 자신의 언급이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대리전’이라는 표현은 명백한 역사 왜곡입니다. 6·25 한국전쟁은 명백히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며,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은 국제사회의 정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이를 ‘대리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마치 한국인이 강대국들의 갈등에 희생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며, 미군 참전 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폄훼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문학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작은 할 수 있지만, 역사적 진실은 존중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한강 작가의 ‘대리전’ 표현은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허물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위험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려야 합니다. 한강 작가의 발언은 우리 사회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는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정확한 역사를 알려주고,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야 합니다.   저는 한강 작가의 ‘대리전’ 표현에 강력히 반대하며,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모든 분을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나가야 합니다. 풀러튼시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는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며,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기념비를 방문하여 역사를 배우고, 자유의 소중함을 되새기기를 바랍니다.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자유를 위해 싸운 선열들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념비 건립에 작은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기념비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역사를 배우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노력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갑시다. 박동우 / 풀러턴 한국전 참전용사비 전 사무총장발언대 문학상 대리전 노벨 문학상 표현 유감 기념비 건립

2024-10-28

[삶의 뜨락에서]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

이 에세이를 쓰기 전 잠깐 망설였다. 뉴욕, 뉴저지 한인 독자들을 상대로 시와 에세이를 쓰는 나 같은 무명인이 어떻게 감히 노벨 문학상 작가의 글을 말할 수 있는가. 어제 아침(10월 10일) 일터로 가는 시간, 급히 날아온 카톡 메시지를 보고 행복한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드디어 해냈구나. 한국 뉴스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어 한강 작가가 문학상을 받는 것은 나라의 경사라고 말했다. 내 개인 의견으로는 한강 수상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주어졌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은 좁은 한국문학의 지평을 전 세계적으로 끌어 올렸다. 경제적으로 세계 무대에 우뚝 선 한국은 이제 문화적으로도 더 높이, 더 멀리 다가가고 있다.     수년 전 내가 안내하고 있는 영어 북클럽 시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어본 ‘The Vegetarian’을 읽었다. 이 책이 맨부커상을 받은 직후였다. 이번에 한강 노벨 문학상의 대표작이 된 후 서가에서 찾아내 다시 읽었다. 이 책의 표지는 도전적이다. 붉은 바탕에 신비로운 검은 모습의 여인 형상이 그려져 있다. 붉은색은 피, 혁명을 상징한다. 저자는 유년 시절, 작가인 아버지 한승원으로부터  5·18 광주 항쟁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강은 불행한 한국 역사의 트라우마를 작품 속에서 승화하고 있다.     문학은 현실의 반영이다. 역사 소설(Historical Novel)은 사실에 의존하면서 주인공과 지명, 사건을 허구화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강의 문체는 노벨상 선정 배경설명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시적’이다. 그의 소설은 긴 산문(Prose) 같은 느낌을 준다. 상징적이고, 은유가 많으며, 간결하면서도 깊은 여운이 있다. 한강은 시로 출발했다. 시인이 쓰는 소설은 자연이나 사건 서술에 ‘인간성’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다. ‘노인과 바다’ 등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닥터 지바고’를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노트르담의 곱추’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모두 시인이었다. 이밖에 수많은 작가가 시로 문학을 시작했고 그래서 글의 흐름은 걸리는 데가 없이 음악처럼 출렁인다.       한국 문학 작품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뛰어난 번역이 필요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영어로 옮겼다. 내 생각으로는 한국인 번역보다 (이름으로도) 원어민 번역이 독자들에게 더 어필 할 것 같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도전적이다. 주인공 김영혜는 꿈에 그동안 먹은 동물들이 나타나 괴롭힘을 당한 후 채식주의자가 된다. 딸이 고기를 먹지 않고 말라가자 부모는 강제로 육류를 먹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녀는 고기만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식물로 간주한다. 화가인 형부는 처제를 누드모델로 해서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나무와 꽃을 그려 넣는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몸에 그려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혜는 정신병원의 뒷마당에 있는 느티나무를 바라본다. 나무가 머리를 이고 서 있다고 착각한 그녀는 나무가 되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물과 햇볕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녀는 또 이 세상의 모든 나무는 형제간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보다 식물을 더 사랑한다.     ‘The Vegetarian’은 180페이지의 짧은 소설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보다는 좀 길지만 어느 문장 하나 버릴 것이 없이 깔끔하게 다듬어진 작품이다. 소설의 한국어 원어본을 접하지 못했으나 영어 번역이 자연스러워 만족스럽게 읽었다. 한국 작가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한국의 영어 교육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있으니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처음부터 영어로 집필하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원작자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채식주의자 vegetarian 노벨 문학상 한강 노벨 한강 수상

2024-10-16

[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없는 글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Jon O.Fosse)의 작품 ‘삼부작(Trilogien)’을 읽었다.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그와 만나기 위해 전혀 사전 공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마침표 없이 시작된 문장은 두 번째 페이지에 가서야 첫 마침표를 볼 수 있었다. 이거 뭐지? 설마 작가가 이렇게 문법을 무시해도 되는지, 아니면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혼동이 왔다. 불편한 마음으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며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한 작품을 선정하기보다는 작가의 여러 작품을 고려해서 수상자를 정하는 추세다. 작가는 1983년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고 ‘보트 하우’‘멜랑꼬리아 I, II’로 인지도를 높였으며 ‘삼부작’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소설로 ‘잠 못 드는 밤(2007)’, ‘올라브의 꿈(2014)’, ‘해질 무렵(2014)’ 이 세 편의 중편을 연작으로 묶어 출간했다.     ‘잠 못 드는 밤’에서는 주인공인 아슬레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7살의 어린 나이에 동갑내기며 연인인 알리다와 출산을 앞두고 고향을 떠난다. 새로운 도시 벼리빈에서 머물 곳을 찾아 헤매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결국 어느 노파 집에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어리고 가난한 연인은 인간 본연의 모습, 살기 위한 근본적인 욕구 등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추워, 배고파, 졸려 등으로 표현한다. 최소한의 대화로 미니멀리즘과 언어 사용에 있어서 잘 절제된 반복 기법을 이용해 시적인 리듬감과 음률을 살린다. 그들이 사는 피오르 해안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신비롭고 웅장한, 그래서 숭고한 자연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 안에 내재하여 있는 음악적 기질과 동화되어 여러 가지 새롭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난다.     ‘올라브의 꿈’에서는 새로운 장소에 새로운 이름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던 아슬레는 알리다와의 결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에게 줄 반지를 사고자 긴 여정에 나선다. 그 도중에 그는 자신의 과거, 살인사건을 기억하는 한 노파를 만나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교수형을 당한다. 알리다는 본능적으로 아슬레의 죽음을 예감하고 떠나지 말 것을 부탁했지만 아슬레는 떠났고 죽게 되었다.     ‘해 질 무렵’에서는 알리다의 벅차오르는 슬픔과 아슬레를 그리워하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즈음 그녀보다 25살이나 연상인 옛고향 아저씨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결국 그의 아내가 되어 그녀는 더 많은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생존이 걸린 막막한 상황에 부닥친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그녀는 눈만 감으면 끊임없이 아슬레의 목소리를 자연과 음악을 통해 듣는다. 그녀는 집을 나와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모든 추위는 따스함이고 모든 바다는 아슬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녀는 아슬레를 더 많이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하나가 된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속한 어리고 외로운 두 영혼은 세상 어디에도 의존할 데가 없었음에도 영혼까지 함께한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 냈다. 죽음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길, 사랑! 결국 사랑이 해냈다. 그들의 소박한 사랑은 거룩하다.     책을 다 읽고 또 읽고 나서야 이 작품을 어렵게 이해하게 되었다. 희곡으로 더 유명한 작가는 소설에 희곡을 접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마침표가 없다. 대신 반복되는 운율이 있다. 피오르에서 느끼는 고요, 외로움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파도 소리는 음악으로, 바이올린으로 떠오른다. 철저한 언어의 자제로 반복되는 단어들은 우리를 상상과 음악의 세계로, 시제 또한 현실에서 영원의 세계로 넘나들며 환영과 신비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작가는 과감하게 문장과 문법의 법칙을 무시하고 그만의 창작법을 살려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민간인이 교수형을 실행하는)은 상상력과 예술의 힘으로 대치시킨 그의 초현실적인 능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노벨 문학상 음악적 기질 피오르 해안

2024-02-23

[열린광장]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랑

성탄절은 평화의 축제다. 천사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선포한다. 이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깃드는 평화는 평온과 화목함이며,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마음속에 평화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평화를 가져야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새로운 희망과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문학 작품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꼽을 수 있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은 한 늙은 어부의 희망과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끈질긴 노력과 투지를 통해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념을 지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노인이 3일간의 사투 끝에 대어를 잡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결국 고기의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와 자신의 오두막에서 곤히 잠든다는 이야기다.     한 늙은 어부의 일화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풍부한 상징과 깊은 사상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내적 평화와 만족에 관한 주제가 훌륭히 표현된 작품이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자신의 열망을 좇아 어려움을 극복하며 잡은 대어를 잃었지만, 그 경험으로 얻은 내적 성취감과 평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행복은 외적 성공이 아닌 내적 성장과 만족, 그리고 마음속에 평화를 갖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작품을 통해 행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행복은 먼바다에 나가 대어를 잡듯이 잡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 어쩌면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은 자신의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행복이 가장 완벽한 행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도 하나의 기술이다. 자신 속에서 행복의 샘을 파는 기술인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우리도 먼바다에 나가 사투를 벌이며 잡은 대어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허무함만 남는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의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평화가 머물 수 없다. 우선 평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행복의 샘에 맑은 물이 고이면서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는 이웃과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화합과 일치를 가져다준다. 그러기에 더욱 성숙한 삶을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과의 화합을 통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열린광장 평화 행복 마음속 행복 내적 평화 노벨 문학상

2023-12-21

[삶의 뜨락에서] 순수한 열정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을 읽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연하의 유부남과 폭풍보다 심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 남자만을 생각하며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내고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일 이외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상, 몸,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도 잊게 하는 열정으로 그에게 깊게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명품이나 저택 혹은 지적인 삶이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랑에 끌리는 정신적 교감이나 지적인 대화가 배제된 단순한 욕망만 드러내고 나열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전개해가는 형식에 있어서 그녀는 감정 상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평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사실만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독자는 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며 긴장감을 즐기는 대중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제목을 ‘Passion Simple’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생생하고 강렬하게 거의 광적으로 묘사하여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충격, 당혹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날마다 애타게 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황홀한 섹스를 한다. 그 이후로는 그와의 정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1년 2개월 후 그는 본국으로 떠난다. 1년 후 꿈속에서처럼 다시 한번 만난 후 그녀는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별의 괴로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은 풍화되기 때문에 어쩌면 단어들로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혹시 그가 에이즈라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해보고 싶었을까. 작가에게 그는 그녀의 상대로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재고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그녀를 남들과 구분시켜주는 어느 한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온몸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책도, 그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그녀에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열광과 악평으로 나뉘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다. 칼날 같은 글쓰기의 작가로서 그 용기와 단호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적으로 충만한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준 다리 역할을 해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적은 개성적인 글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학교에서 사회 계층을 알게 되면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총명한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된다. 바흐를 듣고 책을 쓴다.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고 그런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수치심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을 낳아준 계층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펜의 힘은 칼보다 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순수 열정 passion simple 노벨 문학상 감정 상태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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