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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없는 글

202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Jon O.Fosse)의 작품 ‘삼부작(Trilogien)’을 읽었다. 선입견 없이 순수하게 그와 만나기 위해 전혀 사전 공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문장부터 마침표 없이 시작된 문장은 두 번째 페이지에 가서야 첫 마침표를 볼 수 있었다. 이거 뭐지? 설마 작가가 이렇게 문법을 무시해도 되는지, 아니면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혼동이 왔다. 불편한 마음으로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며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요즘에는 한 작품을 선정하기보다는 작가의 여러 작품을 고려해서 수상자를 정하는 추세다. 작가는 1983년 ‘레드 블랙’으로 데뷔했고 ‘보트 하우’‘멜랑꼬리아 I, II’로 인지도를 높였으며 ‘삼부작’은 가장 최근에 발표한 소설로 ‘잠 못 드는 밤(2007)’, ‘올라브의 꿈(2014)’, ‘해질 무렵(2014)’ 이 세 편의 중편을 연작으로 묶어 출간했다.     ‘잠 못 드는 밤’에서는 주인공인 아슬레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7살의 어린 나이에 동갑내기며 연인인 알리다와 출산을 앞두고 고향을 떠난다. 새로운 도시 벼리빈에서 머물 곳을 찾아 헤매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결국 어느 노파 집에서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어리고 가난한 연인은 인간 본연의 모습, 살기 위한 근본적인 욕구 등을 전혀 미화시키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추워, 배고파, 졸려 등으로 표현한다. 최소한의 대화로 미니멀리즘과 언어 사용에 있어서 잘 절제된 반복 기법을 이용해 시적인 리듬감과 음률을 살린다. 그들이 사는 피오르 해안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신비롭고 웅장한, 그래서 숭고한 자연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그 안에 내재하여 있는 음악적 기질과 동화되어 여러 가지 새롭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거듭난다.     ‘올라브의 꿈’에서는 새로운 장소에 새로운 이름으로 정착하여 살고 있던 아슬레는 알리다와의 결혼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에게 줄 반지를 사고자 긴 여정에 나선다. 그 도중에 그는 자신의 과거, 살인사건을 기억하는 한 노파를 만나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교수형을 당한다. 알리다는 본능적으로 아슬레의 죽음을 예감하고 떠나지 말 것을 부탁했지만 아슬레는 떠났고 죽게 되었다.     ‘해 질 무렵’에서는 알리다의 벅차오르는 슬픔과 아슬레를 그리워하는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즈음 그녀보다 25살이나 연상인 옛고향 아저씨의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결국 그의 아내가 되어 그녀는 더 많은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생존이 걸린 막막한 상황에 부닥친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지만, 그녀는 눈만 감으면 끊임없이 아슬레의 목소리를 자연과 음악을 통해 듣는다. 그녀는 집을 나와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간다. 모든 추위는 따스함이고 모든 바다는 아슬레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그녀는 아슬레를 더 많이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그와 하나가 된다. 삶의 가장 밑바닥에 속한 어리고 외로운 두 영혼은 세상 어디에도 의존할 데가 없었음에도 영혼까지 함께한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 냈다. 죽음을 이겨내는 단 하나의 길, 사랑! 결국 사랑이 해냈다. 그들의 소박한 사랑은 거룩하다.     책을 다 읽고 또 읽고 나서야 이 작품을 어렵게 이해하게 되었다. 희곡으로 더 유명한 작가는 소설에 희곡을 접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마침표가 없다. 대신 반복되는 운율이 있다. 피오르에서 느끼는 고요, 외로움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파도 소리는 음악으로, 바이올린으로 떠오른다. 철저한 언어의 자제로 반복되는 단어들은 우리를 상상과 음악의 세계로, 시제 또한 현실에서 영원의 세계로 넘나들며 환영과 신비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작가는 과감하게 문장과 문법의 법칙을 무시하고 그만의 창작법을 살려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민간인이 교수형을 실행하는)은 상상력과 예술의 힘으로 대치시킨 그의 초현실적인 능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마침표 노벨 문학상 음악적 기질 피오르 해안

2024-02-23

[열린광장]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랑

성탄절은 평화의 축제다. 천사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선포한다. 이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사람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깃드는 평화는 평온과 화목함이며,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마음속에 평화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평화를 가져야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탄절에 새로운 희망과 행복의 의미를 전하는 문학 작품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꼽을 수 있다.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은 한 늙은 어부의 희망과 불굴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끈질긴 노력과 투지를 통해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념을 지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한 노인이 3일간의 사투 끝에 대어를 잡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 떼를 만나 결국 고기의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와 자신의 오두막에서 곤히 잠든다는 이야기다.     한 늙은 어부의 일화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풍부한 상징과 깊은 사상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내적 평화와 만족에 관한 주제가 훌륭히 표현된 작품이다. 주인공 산티아고는 자신의 열망을 좇아 어려움을 극복하며 잡은 대어를 잃었지만, 그 경험으로 얻은 내적 성취감과 평화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행복은 외적 성공이 아닌 내적 성장과 만족, 그리고 마음속에 평화를 갖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작품을 통해 행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행복은 먼바다에 나가 대어를 잡듯이 잡을 수도 없고 얻을 수도 없다. 어쩌면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행복은 자신의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신과 육체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행복이 가장 완벽한 행복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도 하나의 기술이다. 자신 속에서 행복의 샘을 파는 기술인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우리도 먼바다에 나가 사투를 벌이며 잡은 대어를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끌고 항구로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허무함만 남는다.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의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평화가 머물 수 없다. 우선 평안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속 행복의 샘에 맑은 물이 고이면서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는 이웃과의 상호 이해와 존중을 통해 화합과 일치를 가져다준다. 그러기에 더욱 성숙한 삶을 위해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며 삶의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 자신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웃과의 화합을 통해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열린광장 평화 행복 마음속 행복 내적 평화 노벨 문학상

2023-12-21

[삶의 뜨락에서] 순수한 열정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을 읽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연하의 유부남과 폭풍보다 심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 남자만을 생각하며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내고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일 이외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상, 몸,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도 잊게 하는 열정으로 그에게 깊게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명품이나 저택 혹은 지적인 삶이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랑에 끌리는 정신적 교감이나 지적인 대화가 배제된 단순한 욕망만 드러내고 나열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전개해가는 형식에 있어서 그녀는 감정 상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평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사실만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독자는 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며 긴장감을 즐기는 대중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제목을 ‘Passion Simple’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생생하고 강렬하게 거의 광적으로 묘사하여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충격, 당혹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날마다 애타게 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황홀한 섹스를 한다. 그 이후로는 그와의 정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1년 2개월 후 그는 본국으로 떠난다. 1년 후 꿈속에서처럼 다시 한번 만난 후 그녀는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별의 괴로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은 풍화되기 때문에 어쩌면 단어들로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혹시 그가 에이즈라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해보고 싶었을까. 작가에게 그는 그녀의 상대로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재고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그녀를 남들과 구분시켜주는 어느 한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온몸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책도, 그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그녀에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열광과 악평으로 나뉘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다. 칼날 같은 글쓰기의 작가로서 그 용기와 단호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적으로 충만한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준 다리 역할을 해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적은 개성적인 글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학교에서 사회 계층을 알게 되면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총명한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된다. 바흐를 듣고 책을 쓴다.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고 그런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수치심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을 낳아준 계층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펜의 힘은 칼보다 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순수 열정 passion simple 노벨 문학상 감정 상태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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